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동구 갑 (문단 편집)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4> {{{#fff {{{+1 '''강동구 갑'''}}}}}}[br]{{{#fff 강일동, 상일동, 명일1동, 명일2동, 고덕1동, 고덕2동,[br]암사1동, 암사2동, 암사3동, 암사4동, 길1동, 길2동}}}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 {{{+5 '''1'''}}}}}} || '''[[김충환|{{{#373a3c,#dddddd 김충환}}}]](金忠環)''' || '''55,205''' || '''1위''' || || [include(틀: 한나라당)] || '''47.23%''' || '''당선''' || ||<|2> {{{#fff {{{+5 '''2'''}}}}}} || 양관수(梁官洙) || 5,375 || 3위 || || [include(틀: 새천년민주당)] || 4.60% || 낙선 || ||<|2> {{{#000000 {{{+5 '''3'''}}}}}} || [[이부영|{{{#373a3c,#dddddd 이부영}}}]](李富榮) || 50,693 || 2위 || || [include(틀: 열린우리당)] || 43.37% || 낙선 || ||<|2> {{{#fff {{{+5 '''4'''}}}}}} || [[박치웅|{{{#373a3c,#ddd 박치웅}}}]](朴稚雄) || 4,235 || 4위 || || [include(틀: 민주노동당)] || 3.62% || 낙선 || ||<|2> {{{#fff {{{+5 '''5'''}}}}}} || 김병관(金秉冠) || 1,367 || 5위 || || [include(틀: 무소속)] || 1.17%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180,882 ||<|3> '''투표율'''[br]65.01% || || '''투표 수''' || 117,586 || || '''무효표 수''' || 711 || '12년 정치적 동지'가 맞붙게 되어 화제가 되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원과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 이부영 의원이 민주당-한나라당을 거쳐 다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12년 동지 김충환과 맞대결을 하게 되었다. 이부영 의원은 한나라당 원내총무까지 지냈으며, 16대 대선에서도 이회창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 한나라당 내에서 개혁 성향 의원들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2003년 7월 같은 당 소속인 [[이우재(1936)|이우재]], [[김부겸]], [[안영근]], [[김영춘(정치인)|김영춘]]과 한나라당을 탈당하였고 그해 10월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참여했고, 이번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이 지역에 출마하게 된 것. 이부영과 김충환은 서울대 정치학과 선후배 사이로, 두 사람은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 한나라당으로 함께 당적을 옮기며 정치적 고락을 같이 해왔다.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김충환을 정치에 끌어들인 사람도, 구청장 선거에 천거한 사람도 이부영이었다. 1995년 김충환이 강동구청장으로 당선된 이후에도 같은 지역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 주는 돈독한 사이. 그러나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되자 오히려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김충환 후보는 그동안 민선 구청장을 3번 하면서 '주민과 함께 하는 행정'을 지상 가치로 내세워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고 현장을 살피는 구청장으로 시장과 골목 등에서 주민들과 만났다. 이부영 후보도 "행정관료로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울만큼 행정 능력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부영을 배신했다'는 비난도 있는 상황. 반면 이부영 후보는 당적을 계속 옮긴 것이 약점이었다. 또한 "당적 이동만 했지 지역일은 하지 않았다"는 비난도 있었다. 이에대해 이부영 후보는 "그동안 지역주의와 보스정치에 맞서 싸우느라 한국정치의 이단아소리를 들어왔다"면서 "편안한 정치의 길에 주저앉았다면 오늘날의 이부영이 있었겠는가"고 반문하며, "3김 정치, 지역주의 정치에 가장 치열하게 맞섰던 이부영의 장점이 이제 제대로 빛을 발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충환 후보를 향해서는 "임기를 다 채우지도 않고 구청장을 중도 사퇴하면서까지 하필이면 자신을 후견하고 은혜를 준 사람과 맞서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의아할 따름"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현역 이부영의 인지도와 탄핵정국까지 합쳐져 초반 여론조사는 2배가 넘는 격차 (이부영 44%, 김충환 17%, 조선일보)를 보였으나, 김충환 후보가 그동안 다져왔던 탄탄한 지역민심을 받아 역전에 성공, 3.9%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에 성공했다. [[출구조사]]에서도 이부영 46:김충환 41로 이부영 후보가 우세로 나타났지만, 개표 30%에서 김충환 후보가 이부영 후보를 역전한 이후 단 한 번도 재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그대로 김충환 후보가 당선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